적용 범위

본 글은 민간 건설공사도급계약과 공공계약(국가계약법·공사계약일반조건 체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계약해지 법리를 설명합니다. 구체적 결론은 개별 계약서의 해지 조항 문언과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해지 사유가 정산의 출발점을 바꾼다

민법은 도급계약의 중도 종료에 관해 성격이 다른 두 갈래의 경로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민법 제673조가 정하는 도급인의 임의해제권으로,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전이라면 도급인은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시공사에게 별도의 계약위반이 없어도 발주자 사정만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점에서, 실무에서 말하는 ‘편의해지’의 민법적 근거가 됩니다.

다른 하나는 시공사의 채무불이행(공사중단, 준공가능성 상실, 지시 불이행 등)을 이유로 한 해지로, 표준계약서와 공사계약일반조건 체계는 ‘수급인의 책임 있는 사유로 준공기한 내 완성 가능성이 없음이 명백한 경우’ 등을 별도의 해지사유로 규정합니다. 이 경우 민법 제551조에 따라 해지가 있어도 손해배상 청구권은 이와 별도로 존속합니다.

두 경로는 해지권의 발생 근거만 다른 것이 아니라, 해지 이후 정산에서 손해를 누가 부담하는가라는 방향 자체를 바꿉니다. 그런데 실무에서 작성되는 해지통지서는 ‘계약을 해지한다’는 결론만 담고, 해지 사유의 법적 성격이나 근거 조항을 명확히 특정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는 이후 정산 협상이나 분쟁 단계에서 해지 사유 자체를 다시 다투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지체상금 상계, 편의해지와 귀책해지는 다르게 작동한다

지체상금은 준공기한 내 공사를 완성하지 못했을 때 계약금액에 지체상금률과 지체일수를 곱해 산출하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입니다. 공공계약의 공사계약일반조건 체계 역시 같은 산식을 두고, 계약이 해제·해지된 경우에는 기성부분이 인수된 때 해당 부분에 상당하는 대가를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발주자의 편의해지의 경우, 시공사에게는 애초에 지체책임을 물을 원인이 없으므로 지체상금이 발생할 여지가 없고, 기성부분 대가에서 지체상금을 상계하는 문제도 생기지 않습니다. 정산의 중심은 기성부분 대가와 함께, 계약이 계속 이행되리라 믿고 지출한 비용 등 신뢰이익 손해의 배상범위로 옮겨갑니다. 계약 해지·해제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에서 채권자가 계약이 이행되리라 믿고 지출한 비용의 배상을 구할 수 있다는 법리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공사 귀책사유로 해지된 경우에는 구도가 달라집니다. 준공기한 경과 이후까지 지체상금이 발생해 있었다면 발주자는 기성부분 대가에서 이를 공제(상계)하려 하고, 나아가 해지로 추가 발생한 손해(재시공비용, 신규 시공사 선정 비용, 공기지연에 따른 발주자 측 손해 등)에 대해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계약이 해지된 이후에는 지체상금 산정의 전제인 ‘이행 중’이라는 상태 자체가 종료되므로, 지체상금과 해지 손해배상을 어느 시점까지, 어떤 범위로 함께 인정할 수 있는지는 계약 문언과 해지 시점에 따라 달리 판단되는 지점입니다.

구분발주자 편의해지시공사 귀책해지
주요 근거민법 제673조, 계약서상 편의해지(임의해지) 조항민법 제544조·제551조, 계약서상 귀책사유 해지 조항
지체상금원칙적으로 발생하지 않음해지 이전 발생분이 기성대가 상계 대상이 될 수 있음
손해배상 방향발주자가 시공사의 손해(신뢰이익 등)를 배상시공사가 발주자의 손해(재시공비 등)를 배상
위약금·위약벌 조항적용 근거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조항의 성격에 따라 감액 가능 여부가 갈림
기성부분 대가인수된 기성부분에 대한 대가 지급동일하게 지급되나 상계·공제 항목이 추가될 수 있음

위약벌과 손해배상예정액, 감액 가능성이 갈린다

계약서에 해지 시 위약금·위약벌 조항을 두는 경우, 그 성격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에 따라 다툼의 구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민법 제398조 제2항은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법원이 이를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반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을 통해, 위약벌로 성격이 인정되는 위약금에 대해서는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하여 감액할 수 없고, 그 액수가 과도한 경우에는 공서양속 위반을 이유로 전부 또는 일부를 무효로 보아 통제한다는 법리를 확인했습니다.

즉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성격지어지면 법원의 재량적 감액이 가능하지만, 위약벌로 성격지어지면 감액이 아니라 ‘전부 유효 또는 전부(일부) 무효’라는 이분법적 판단을 받게 됩니다. 다만 하나의 위약금 조항이 손해전보 목적과 이행확보·제재 목적을 함께 가진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위약금 전체 금액을 기준으로 제398조 제2항에 따른 감액이 가능하다고 본 판례(대법원 2020. 11. 12. 선고 2017다275270 판결)도 있어, 조항의 문언과 체결 경위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이 구분이 해지 사유 논의와 맞물리는 지점은, 시공사 귀책해지에서 발주자가 위약금·위약벌 조항에 근거해 청구하는 금액이 실제로는 손해전보 목적의 예정액에 가까운지, 이행 강제를 위한 제재적 성격이 강한지에 따라 시공사가 다툴 수 있는 여지가 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편의해지 국면에서는 시공사의 채무불이행이 전제되지 않으므로, 이러한 위약금·위약벌 조항이 애초에 작동할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해지통지서, 사유를 특정하지 않으면 정산에서 불리해진다

실무에서 반복되는 문제는 해지통지서에 ‘귀책사유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취지만 담고, 계약의 어느 조항, 어떤 사실관계에 근거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부동산 PF 시장 위축 등으로 사업 자체가 중단되어 발주자 사정으로 해지에 이르는 사례가 늘어나는 국면에서는, 실질은 편의해지에 가까우면서도 통지서에는 귀책해지처럼 보이는 문구가 사용되는 경우도 있어, 시공사 입장에서는 정산에 앞서 통지 단계에서부터 해지 사유의 성격을 다퉈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1. 통지서 수령 시 확인할 사항

  • 통지서가 인용하고 있는 계약 조항이 편의해지 조항인지, 귀책사유 해지 조항인지
  • 귀책사유로 기재된 경우, 그 사실관계(지연일수, 하자내역, 시정요구·최고 이력)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는지
  • 지체상금이 이미 발생·통지된 상태였는지, 해지 시점 기준 상계가 예정된 금액이 있는지

2. 정산 협상 단계에서 확인할 사항

  • 계약서상 위약금·위약벌 조항의 명칭과 실제 성격(손해전보 목적인지, 이행확보·제재 목적인지)
  • 기성부분 대가 산정과 별개로 청구 가능한 항목(신뢰이익 손해, 철수비용, 자재처분손실 등)의 구분
  • 해지 사유에 대한 이의를 통지 수령 직후 서면으로 남겼는지 여부
SRE 실무 체크포인트 — 해지통지서 검토 및 정산 대응
  • 해지 근거 조항이 편의해지 조항인지 귀책사유 해지 조항인지 문언으로 확인했는가
  • 귀책사유 기재 시 사실관계와 최고·시정요구 이력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는가
  • 지체상금 발생 여부와 기성대가 상계 예정 금액을 별도로 정리했는가
  • 위약금·위약벌 조항의 성격을 손해전보 목적과 제재 목적으로 구분해 검토했는가
  • 해지 사유에 대한 이의를 통지 수령 직후 서면으로 남겼는가

해지 사유의 법적 성격을 다투는 문제는 기성고·철수비용 정산 실무와는 별개의 쟁점으로, 초기 단계에서 사유 자체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