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 범위

본 글은 국내 건설공사도급계약(하도급계약 포함)을 전제로, 채무자회생법상 회생절차 및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른 워크아웃(공동관리절차) 국면에서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다룹니다. 개별 사건의 결론은 계약 문언과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제 해지 여부는 구체적 검토를 거쳐야 합니다.

도산해지조항, 왜 표준계약서에 들어가 있는가

도산해지조항(이른바 ipso facto clause)은 계약 상대방에 대해 회생절차 개시신청, 개시결정, 파산신청 등 도산 관련 사유가 발생하면 그 자체를 계약해지·해제 사유 또는 기한이익 상실 사유로 정하는 특약입니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시공사의 재무 위기 징후가 나타난 시점에 공사를 계속 맡길지 여부를 신속히 결정할 필요가 있고, 이 조항은 그런 필요에서 임대차·리스·프로젝트파이낸싱 계약은 물론 건설 도급계약서에도 널리 포함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도산해지조항은 계약 당사자 간의 사적 약정일 뿐이고, 그 상위에는 도산절차의 목적과 강행규정성을 담은 채무자회생법이 있습니다. 계약자유의 원칙과 도산법의 집단적·강행적 성격이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이 조항의 효력 문제입니다.

판례의 흐름 —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인지가 관건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은 회생절차 개시 당시 채무자와 상대방 쌍방이 계약의 이행을 완료하지 않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대해, 관리인이 계약을 해제하거나 채무자의 채무를 이행하고 상대방의 채무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공사가 진행 중인 도급계약은 전형적으로 이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합니다.

대법원은 2007년 판결(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다38263 판결)에서 도산해지조항이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 판결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사안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판단을 진행 중인 공사도급계약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후 실무·학계의 일반적 평가입니다.

이후 하급심에서는 방향이 좀 더 뚜렷해졌습니다. 2023년 서울고등법원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서 회생절차의 개시신청이나 개시결정 자체를 해제·해지사유로 정한 특약, 즉 도산해제조항은 원칙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해당 판결도 "도산해제조항의 효력을 부정하더라도 계약 상대방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법정해제·해지권은 별도로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아, 도산해지조항이 아닌 다른 해지 근거의 길을 열어두었습니다.

정리하면, 판례의 축은 "도산 사유 자체를 이유로 한 해지"와 "채무불이행 등 별도 사유를 이유로 한 해지"를 구분하는 데 있습니다. 전자는 진행 중인 공사도급계약처럼 쌍방미이행 상태에서는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고, 후자는 회생절차 중이라도 원칙적으로 가능합니다.

계약 상태판례 경향실무 시사점
공사가 진행 중이고 양측에 이행할 채무가 남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도산해지조항만으로는 효력 인정에 소극적 (2023년 서울고등법원 등)도산 사유만을 근거로 한 일방적 해지통보는 추후 무효로 다투어질 위험
공사가 사실상 완료되어 대금지급 채무만 남은 경우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이 아니므로 도산해지조항 효력을 인정할 여지 (2005다38263 판결 취지)계약 종료 단계에 가까울수록 도산해지조항의 유효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짐

관리인의 선택권과 발주처·시공사의 대응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관리인은 진행 중인 도급계약에 대해 이행(공사 계속)과 해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관리인이 이행을 선택하면 발주처는 도산 사유만으로는 계약을 임의로 종료시킬 수 없고, 관리인이 해제를 선택하면 기성 부분 정산과 함께 계약관계가 정리됩니다. 이때 해제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이나 기성 미지급금은 회생채권으로 취급되어, 관리인을 상대로 한 직접 이행청구 소송이 아니라 법원에 대한 채권신고와 채권조사확정재판 등 회생절차 내의 절차를 통해서만 다툴 수 있다는 점도 실무상 자주 놓치는 부분입니다.

발주처 입장에서 도산해지조항만을 근거로 서둘러 해지를 통보하면, 이후 그 해지 자체가 무효로 판단될 경우 지체상금·손해배상 산정의 기준일과 책임 소재가 통째로 뒤집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공사·관리인 입장에서는 발주처의 해지통보가 도산 사유만을 근거로 한 것인지, 아니면 별도의 채무불이행 사유가 함께 주장되고 있는지를 구분해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워크아웃은 다르다 — 법정 회생절차와의 구분

여기서 실무자들이 자주 혼동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워크아웃(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른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절차)은 법원이 아니라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주도하는 사적·계약적 성격의 구조조정 절차로, 법원의 회생절차 개시결정과는 근거 법령과 절차의 성격이 다릅니다. 앞서 살펴본 채무자회생법 제119조의 관리인 선택권이나,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서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부정하는 판례 법리는 원칙적으로 법원의 회생절차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따라서 계약서에 "워크아웃 개시" 또는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절차 개시"를 별도의 해지사유로 규정해 두었다면, 이는 계약자유 원칙에 따라 유효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법정 회생절차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다만 워크아웃 중인 시공사가 이후 법정관리로 전환되는 사례도 드물지 않으므로, 절차 전환 시점에 따라 적용되는 법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구분법정 회생절차워크아웃(공동관리절차)
근거 법령채무자회생법기업구조조정촉진법, 채권단 자율협약
개시 주체법원채권금융기관협의회
제119조(쌍방미이행 쌍무계약) 적용적용됨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음
도산해지조항 효력쌍방미이행 상태라면 무효 가능성 높음계약자유 원칙상 유효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음(사실관계별 판단 필요)
SRE 실무 체크포인트 — 도산 관련 계약해지 검토
  • 계약이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상태인지(잔여 공사 범위, 기성률) 확인
  • 진행 중인 절차가 법원의 법정 회생절차인지, 워크아웃(공동관리절차)인지 구분
  • 해지 사유가 도산해지조항 단독인지, 공기 지연·현장 이탈 등 별도 채무불이행 사유와 병존하는지 확인 및 증빙 확보
  • 회생절차라면 관리인 선임 여부와 이행·해제 선택 통지 시점 확인
  • 해지통보 시점과 회생절차 개시신청·개시결정 시점의 선후관계 정리
  • 해제로 인한 손해배상·기성 미지급금은 회생채권 신고 대상이며 별도 소송으로 직접 청구할 수 없다는 점 유의
  • 하도급사가 있는 경우 하도급대금 직접지급 요건, 지급보증 이행청구 가능 여부도 함께 점검

도산해지조항의 문언만으로는 해지의 효력을 단정할 수 없습니다. 계약 이행 상태와 절차의 종류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검토의 출발점입니다.

맺음말

최근 월간 건설시장동향에서도 공공 발주가 반등했음에도 건설기성과 고용 지표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나타나듯, 시공사의 재무 위험은 당분간 낮아지기 어려운 국면입니다. 발주처와 시공사, 채권금융기관 모두 표준계약서의 도산해지조항을 "당연히 유효한 해지사유"로 전제하기보다, 계약의 이행 상태와 진행 중인 절차의 성격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