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 범위

본 글은 국가계약법·지방계약법이 적용되는 장기계속공사계약을 대상으로 합니다. 계속비계약, 민간공사, 국제계약에는 다른 구조가 적용됩니다. 또한 개별 사건의 결론은 계약조건과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아래 내용은 검토의 출발점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장기계속공사계약은 총공사금액과 총공사기간을 정해두고 별도 계약을 맺는 구조가 아닙니다. 1차년도 공사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총공사금액과 총공사기간을 부기(附記)하는 형태입니다. 이 부기된 합의를 실무에서 '총괄계약'이라 부릅니다.

예산이 연도별로 확보되기 때문에, 전체 예산 없이 첫해 예산만으로 착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방식의 장점입니다. 동시에 이것이 분쟁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예산 확보가 지연되면 공사기간이 함께 밀리는데, 그 지연은 시공사의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실제 규모를 보면 문제의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건설공사 사후평가 자료 152건을 분석한 결과, 81.3%의 사업이 최초 계약 대비 공사기간이 평균 52.9% 증가한 상태로 준공되고 있습니다. 예외적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결과입니다.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 무엇이 확정되었나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235189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쟁점의 기준점입니다.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공사에 참여한 건설사들이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소송이 발단이었습니다.

다수의견은 총괄계약의 구속력을 부정했습니다. 총괄계약은 사업의 규모나 공사금액, 공사기간에 관해 잠정적으로 활용하는 기준일 뿐이며, 그 효력은 다음 세 가지에 한정된다고 보았습니다.

구분내용
계약상대방의 결정연차별 계약마다 경쟁입찰 절차를 다시 밟을 필요가 없음
계약이행 의사의 확정정당한 사유 없이 이행을 거절할 수 없음
계약의 전체 규모총괄계약을 기준으로 함

급부의 구체적 내용 — 즉 공사기간과 공사금액은 연차별 계약을 통해 확정된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따라서 총공사기간이 아무리 늘어나도, 그 자체를 근거로 계약금액 조정을 구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학계의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위험을 야기했거나 더 적은 비용으로 회피할 수 있는 쪽이 그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예산 부족으로 인한 기간 연장의 위험을 시공사에 지우는 것은 그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입니다. 다만 비판과 별개로 현재의 재판 실무는 이 판결을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2025년 12월 계약예규 개정 — 공백기 보상의 신설

판결 이후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자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섰습니다. 2025년 8월 '지방중심 건설투자 보강방안' 발표에 이어, 2025년 12월 31일 계약예규(공사계약일반조건)가 개정되었습니다.

신설된 제26조 제9항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장기계속공사에서 계약상대자의 책임에 속하지 않는 사유로 각 연차별 계약 사이에 공백기간이 발생한 경우,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상대자의 신청에 따라 다음 연차별 계약에서 그 공백기간에 발생한 비용을 실비 범위 내에서 조정합니다.

차수와 차수 사이에 계약이 없는 기간 동안 현장을 유지한 비용을 청구할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총괄계약의 구속력을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공백기'에 한정된 보상이며, 이 한계가 다음에서 설명할 문제를 낳습니다.

발주처에서 관찰되는 회피 유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위 개정에도 불구하고 공기연장 비용을 온전히 지급받지 못하는 두 가지 유형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두 유형 모두 '공백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방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형 1 — 공사량과 무관한 차수 기간 설정

예산이 부족해 차수 계약 물량을 줄이면서도, 준공일은 12월 31일로 그대로 두는 방식입니다.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당초 n차 계약이 물량 110, 소요기간 11개월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예산 부족으로 물량이 60으로 축소되었다면 소요기간은 6개월이 적정합니다. 그러면 6월 말 준공 후 다음 해 1월 착공까지 순수 공백기가 발생하고, 그 기간의 현장유지비는 개정 예규에 따라 청구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물량은 60으로 줄이면서 준공일만 12월 31일로 유지하면, 계약상으로는 공백기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실제로는 6개월치 일이 12개월에 걸쳐 늘어진 것인데, 서류상으로는 정상적인 연속 계약이 됩니다.

유형 2 — 후행 차수의 조기 발주로 인한 중첩

선행 차수가 연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후행 차수를 미리 발주해 기간을 겹치게 하는 방식입니다.

1차분 계약이 당초 준공일을 넘겨 연장되는 중에 2차분 계약을 착공시키면, 1차분의 연장기간과 2차분의 계약기간이 중첩됩니다. 이때 중첩 구간은 공백기가 아니므로 공기연장 실비 산정 대상에서 빠지게 됩니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연장된 기간 동안 현장을 유지한 것이 분명한데도 청구 근거가 사라집니다.

유의

위 두 유형은 연구기관이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것으로, 모든 발주기관에서 의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산 배정 사정이나 사업 여건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시공사가 비용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은 동일하므로, 시공사로서는 원인과 무관하게 이러한 상황을 식별하고 기록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시공사의 대응 — 무엇을 관리해야 하는가

총괄계약을 근거로 한 청구가 막혀 있는 이상, 대응의 초점은 차수별 계약 단위의 관리로 옮겨가야 합니다. 사후에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접근보다, 계약 체결 시점부터 기록을 남기는 편이 실효적입니다.

1. 차수 계약 체결 시점의 검토와 기록

차수 계약을 체결할 때 부여된 공사기간이 계약 물량에 비추어 적정한지를 검토하고, 그 검토 결과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물량 대비 기간이 과도하게 길게 설정되었다면, 그 사유와 이에 대한 시공사의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해 두는 것이 이후 논의의 근거가 됩니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시점이 사실상 유일한 협의 기회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점을 지나면 '합의된 기간'이 되어버립니다.

2. 실제 투입과 계약기간의 괴리 기록

물량이 축소된 차수에서 실제 작업이 언제 종료되었는지계약상 준공일이 언제인지를 분리해 기록합니다. 작업일보, 월간공정보고, 인원·장비 투입 현황이 이 괴리를 보여주는 자료가 됩니다.

실제 작업 종료 후 계약 준공일까지의 기간에도 현장사무소·관리인력이 유지되었다면, 그 기간과 비용을 별도로 집계해 둡니다. 사후에 소급해 재구성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3. 차수 중첩 구간의 비용 구분

선행 차수의 연장기간과 후행 차수가 겹치는 경우, 어느 차수를 위해 투입된 비용인지를 구분해 기록합니다. 구분 없이 뭉뚱그려 관리하면 중첩 구간 전체가 후행 차수의 비용으로 흡수되어, 선행 차수의 연장에 따른 추가 부담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4. 지연 원인의 귀책 정리

공기연장 비용의 전제는 계약상대자의 책임에 속하지 않는 사유입니다. 예산 미확보, 인허가 지연, 토지보상 지연, 문화재 발굴, 민원 등 발주처 영역 또는 외부 요인에 해당하는 사유를 발생 시점에 문서로 특정해 둡니다.

지연 사유가 여러 개 겹치는 경우, 시공사 귀책 사유가 섞여 있으면 전체 청구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유별로 기간을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5. 청구 시기의 관리

이 부분이 실무에서 가장 자주 놓치는 지점입니다. 계약예규는 공기연장 비용의 청구 기한을 계속비계약과 장기계속계약에 대해 다르게 정하고 있습니다.

계약 방식청구 기한
계속비계약준공대가 수령 전까지
장기계속계약각 차수별 준공대가 수령 전까지

장기계속공사에서는 해당 차수의 준공대가를 수령하면 그 차수에 관한 조정 신청 기회가 소멸합니다. 전체 공사가 끝난 뒤 한꺼번에 정리하려다 이미 지나간 차수들의 청구권을 잃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차수별 준공 시점마다 신청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내부 관리 항목으로 두어야 합니다.

또한 이 제도는 수혜자 신청주의입니다. 발주처가 알아서 지급하지 않습니다. 신청하지 않으면 조정도 없습니다.

입법 동향 —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총계약기간의 구속력을 인정하려는 입법 시도는 20대 국회부터 반복되어 왔습니다. 재정당국은 재정 운영의 탄력성 저하와, 구속력을 인정하면 장기계속공사와 계속비공사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유지해 왔습니다.

국회발의 현황결과
20대국가계약법·지방계약법 개정안 3건임기만료 폐기
21대국가계약법 개정안 2건임기만료 폐기
22대국가계약법 개정안 2건, 지방계약법 개정안 1건소관위 계류 중

22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들이 통과되면 실무 구조가 상당히 달라집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는 통과를 전제로 계약관리 방침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현행 판례와 개정 예규를 기준으로 관리하되, 입법 동향을 함께 지켜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정리

이 쟁점의 실질은 법리 다툼이 아니라 기록의 문제로 옮겨왔습니다. 총괄계약을 근거로 한 청구가 막혀 있는 이상, 차수별 계약 단위에서 무엇을 남겨두었는지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 다섯 가지입니다.

  • 차수 계약 체결 시점에 물량 대비 기간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의견을 기록
  • 실제 작업 종료일과 계약 준공일의 괴리를 분리해 관리
  • 차수 중첩 구간의 비용을 차수별로 구분
  • 지연 사유를 발생 시점에 귀책별로 특정
  • 차수별 준공대가 수령 전에 조정 신청 — 시기를 놓치면 회복되지 않음

이 중 마지막 항목이 가장 치명적입니다. 앞의 네 가지를 충실히 해두어도 신청 시기를 놓치면 사용할 기회가 없습니다.